비즈한국 presents

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아래로 스크롤

여자 연습생
10명 중 8명은
월경을 안 해요.
- 엔터테인먼트 신인개발팀 관계자

오전 5시에 일어나서 새벽 2시에 귀가하는 삶.

다이어트를 위해
일주일 동안 물만 마시는 ‘아이들’이 엔터테인먼트 왕국에는 넘쳐난다.

브레이브걸스 멤버였던 혜란은 연습생 기간을 포함해
자그만치 10년간 아이돌 생활을 했다.

연습량이 많아 하루 2시간도 채 못 잔 적도 많았다.

혜란을 가장 힘들게 한 건 다이어트’ 압박이었다.

먹고,
몸무게를 재고,
다이어트를 하고,
하루 8시간씩 운동을 했다.

10일 동안 음식은커녕 물조차 안 마신 적도 있다.

물을 삼키지 않고 한 모금 머금은 뒤 뱉고,
또 머금은 뒤 뱉었다.
그렇게 버텼다.

촬영 중 발목을 다쳤다.
목에도 염증이 생겼다.

그렇게 아프다 7년 계약기간이 끝난 뒤 그룹을 나왔다.

브레이브걸스 멤버 노혜란

업계 자체가 그런 분위기인 거죠.
‘너는 몸이 약간 부해 보이니
볼륨감을 키워서 날씬해 보이게 해봐라’,
이런 말이 일상적이에요.

장염에 걸리면, 살 빠지니까 잘됐다고 해요.

여기서 유행하는 다이어트약이 있어요.
이걸 먹으면 몸에서 수분이 다 빠져나갑니다.
그래도 무조건 먹는 거죠.
저도 자발적으로 몇 달 동안 먹은 적이 있어요.
일단 몸무게를 맞춰야 하니까.
이걸 먹고 간질까지 온 친구도 있었어요.

브레이브걸스 멤버 노혜란

아무리 사람들과 사이가 좋았어도
이 생활을 하다 보면 관계가 망가져요.
다이어트 해야 하니까 밥도 못 먹지,
바깥에도 못 나가지.
하고 싶은 노래도 못 하고.

10~20대 초반 아이들이 휴대폰 없이
한 공간에서 24시간 붙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왔는데,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는 너무 먼 거죠.

연습생의 24시간

아이돌과 연습생이 고통스러운 건 비단 다이어트 때문만은 아니다.

학교를 제대로 가지 못하고,
살인적인 스케줄이 이들을 기다린다.

‘행사’와 ‘방송일정’이 없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이돌은 일하고 있다.

연습실에는 노동법이 작동하지 않는다.

연습생 4인의 하루 스케줄

연습생 A 연습생 B 연습생 C 연습생 D
0:00 👨‍🎤
개인 연습
취침 🪩
단체 군무 연습
👨‍🎤
개인 연습
1:00
2:00
3:00
4:00 취침
5:00 취침 취침
6:00
7:00 📚
학교
🏋️‍♀️
운동
8:00 🏋️‍♀️
운동
9:00
10:00 ‍🎤
보컬 레슨
‍🎤
보컬 레슨
11:00 👨‍🎤
개인 연습
12:00 🥬
점심 식사
🥬
점심 식사
🥬
점심 식사
🥬
점심 식사
13:00 👯‍♂️
춤 레슨
💃
라이브 연습
👯‍♂️
춤 레슨
👯‍♂️
춤 레슨
14:00
15:00 👯‍♂️
춤 레슨
👨‍🎤
개인 연습
16:00 👨‍🎤
개인 연습
‍🎤
보컬 레슨
17:00 👨‍🎤
개인 연습
18:00 🥬
저녁 식사
🥬
저녁 식사
🥬
저녁 식사
🥬
저녁 식사
19:00 ‍🎤
보컬 레슨
🪩
단체 군무 연습
🏋️‍♀️
운동
🪩
단체 군무 연습
20:00
21:00 👨‍🎤
개인 연습
22:00 📈
일과 보고
23:00 📈
일과 보고
👨‍🎤
개인 연습

이들의 노동시간, 얼마나 될까?

1주 = 105시간
1개월 = 450시간
1년 = 5475시간
*연습생 A의 연습시간(일 15시간)을 1주, 1개월, 1년으로 환산.

연습생은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다.

이들에게 연습을 시키거나 심지어는 ‘출연’을 시켜도 돈을 지급하지 않아도 괜찮다.

‘무급’일 뿐 아니라 이들이 사용한 돈은 데뷔 후 모두 갚아야 한다.

소속사는 매달 얼마나 이들에게 돈을 썼는지 알려야 할 의무가 있지만,
비즈한국이 만난 연습생들은 한 번도 정산서를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2024년 최저임금은 9,860원.
연습시간을 최저임금으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연습생 A의 한 달,
‘최저 임금’으로 계산하면?

= 4,585,900

* 일 15시간, 한 달 31일 기준. 2024년 최저임금 9,860원을 월급으로 환산.
관계자들의 증언

아이돌 육성 시스템, 왜 문제인가

BTS와 블랙핑크가 세계적인 스타가 된 현재.
K팝은 대한민국 최고의 수출품이 됐다.

그러나 K팝에는 항상 꼬리표가 따라온다.
K팝 아이돌은 어린 나이부터 엄격한 통제 속에 생활하는 탓에
정신적 압박이 심하다는 비판이다.

비즈한국이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진짜’ 이야기를 들었다.

“엔터테인먼트에는 교육자가 없다”

- 허유정 | 소우주컴퍼니 대표 | 걸그룹 단발머리 전 멤버 | 전 기획사 신인개발팀
허유정 소우주컴퍼니 대표

연습생은 항상 노동상태에 놓여 있지만
일반 회사원과 달리 4대 보험 같은 실질적인 보호망이 없어요.
그런 만큼 정기 건강검진도 필수로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해요.

- 허유정

허유정 대표는 아이돌 생활 이후 ‘뼈나이 80세’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다.

이후 아이들을 ‘건강하게’ 아이돌로 만들고자
대학에 가서 ‘교사’ 자격증을 이수하고 기획사 신인개발팀에 들어갔다.

그러나 허유정 대표의 노력은 관철되지 않았다.

연습생
노동자도, 학생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허유정 소우주컴퍼니 대표

연습생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키워보겠다고
교육자의 관점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저 하나 바뀐다고 달라지는 건 없더라고요.

소속사는 미성년자 아이돌과 연습생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연습생 표준계약서 기본은 ‘3년’이지만, 소속사는 연습생 계약을 무제한 연장할 수 있다.

과연 이들의 정신 건강은 괜찮을까?

그래서 허유정 대표는 석사 논문 주제로 아이돌의 정신건강을 연구했다.

아이돌 지망생, 13개월 이상 연습하면 ‘삶의 만족도’ 떨어진다

허유정 대표(중앙대학교 박사과정 연구원)가 지난 2024년 3월부터 진행한 ‘아이돌 지망생의 자기효능감, 외로움, 외향성이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 따르면 K팝 아이돌 지망생의 연습기간 정도에 따른 최적자극수준은 ‘13개월’로 나타났다.

허 대표는 “연습 기간이 13개월 이하일 때는 삶의 만족도가 높았다. 그러나 연습 기간이 13개월을 넘어가면 자기효능감과 외향성이 감소하고 외로움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속적인 오디션 탈락 경험이나 부정적 평가 같은 경험이 누적되면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줄어들고 불안과 우울로 인해 외로움이 증가한 결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허 대표는 “이러한 결과는 아이돌 지망생의 심리적 요인과 삶의 만족도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표를 제공하며 실질적인 연습 기간에 대한 지침을 제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K팝 아이돌 데뷔는 곧 글로벌 데뷔”

엔터사들은 ​​수출을 넘어 현지에서 아이돌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국내 최대 기획사들은 미국에 법인을 세우고 K팝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가동했다. 하이브는 2021년 저스틴 비버의 매니저로 잘 알려진 스쿠터 브라운의 회사 이타카 홀딩스를 인수했다. 이후 미국 음반사 게펜 레코드와 합작해 현지 걸그룹 캣츠아이를 데뷔시켰다.

​JYP엔터테인먼트 역시 ​지난 1월 미국 음반사 리퍼블릭 레코드와 합작해 미국 현지 걸그룹 VCHA(비챠)를 데뷔시켰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SM엔터테인먼트는 LA에 통합법인을 설립해 미국에서 엔터 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아이돌 육성 시스템, 해외에서도 작동할까?

“K팝 좋아하지만, K팝 아이돌 되고 싶진 않아”

K팝은 ‘북유럽’에서도 인기다. 스웨덴에서는 매년 ‘K팝 페스티벌’이 열린다. K팝 댄스, 노래 등을 선보이는 ‘경연 대회’다.

지난 6월 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2024 K-POP 노르딕 페스티벌에는 북유럽 각지에서 참가했다. 참가팀 총 19개팀으로 인원 수만 150명이다. 스웨덴 출신부터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까지. 항공과 체류비도 모두 자비로 충당했다.

북유럽 최초로 K팝 행사를 시작한 주스웨덴 한국문화원 이경재 원장은 북유럽에서 K팝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고 말한다. 이 원장은 “북유럽은 유럽 내 다른 국가보다는 K팝이 조금 늦게 전파됐다. 그런데 지금은 행사를 하면 정말 많은 분들이 참여한다. 길을 가다가도 K팝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작년 행사에서도 K팝을 즐기는 친구들이 다같이 만나서 정말 행복해 했다. 네트워크의 역할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행사의 홍보대사로 무대를 선보인 프림로즈 멤버들 역시 “리허설을 하고 현장에 와보니 조금씩 실감이 난다. 생각보다 규모가 굉장히 크고 호응이 좋다”고 밝혔다.

페스티벌에 참여한 ‘북유럽’ 사람들은 K팝 행사를 위해 지난 몇 달간 연습에 매진했다.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직업도 연령대도 다양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

바로 K팝을 사랑한다는 것. 좋아하는 K팝 아이돌도 하나쯤은 있다. 이날 참여한 팀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아이돌은 ‘에이티즈’.

하지만 이들은 ‘아이돌’이 되기를 희망하지 않는다.

“K팝의 가장 큰 매력은 ‘퍼포먼스’다. 다만 우리 중에 아이돌을 희망하는 사람은 없다.”

‘왜’ 아이돌을 희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HARD WORKING”이라고 말했다.

USC(서던캘리포니아대학,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미국 최초로 ‘K-POP’을 정식과목으로 개설한 이혜진 교수는 “한국계, 아시아계가 아닌 백인, 유럽인들은 K팝 아이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거다. 인종적인 부분도 분명히 있다. 비챠, 캣츠아이 등 현지 걸그룹이 나왔지만, 아직은 실험적이다. ‘한국식 연습생’ 시스템이 적용된 상태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유럽, 미국 시스템은 아티스트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중시한다. 육성되고 가공된 사람을 아티스트라고 볼 수 있느냐 하는 의구심도 있다. 그래서 이 시스템을 전부 적용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K팝 시스템이 가혹하다기보다는
한국이 가혹한 거죠.” - 이상훈 진엔터테인먼트 대표

독일에서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창업한 이상훈 진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매년 ‘코리아 나이트’를 개최한다. K팝 페스티벌이 독일에서 열리는 셈이다.

중, 고등학교를 독일에서 나왔다는 이상훈 대표는 “사실 K팝 시스템이 가혹하다기보다는 한국이 가혹한 거죠. 한국은 무한 경쟁 시스템이라 누구나 조기 교육을 받고, 음악산업도 마찬가지예요”라고 지적한다.

그는 유럽에 분명 K팝 소비층이 있지만, 그들이 ‘아이돌’이 되고 싶어 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한다. “해외에 있는 한국인에겐 K팝이 글로벌화되는 게 굉장히 좋죠. 수요층도 분명하고요. 다만 육성 시스템을 수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있습니다. 유럽은 굉장히 자율적입니다. 본인이 스스로 노력해야지 성과를 낼 수 있는 문화이다 보니 외부 시스템이 강압하면 거부감이 늘어날 수밖에 없죠. 물론 국내 인구가 줄고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했을 때 외국으로 눈을 돌리는 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인, 학교 빠지는 활동에 민감” - MJ Choi 아이러브댄스 대표

미국 뉴욕에서 K팝 댄스를 가르치는 MJ Choi(최) 아이러브댄스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소속사에서 연락이 와서 추천하기도 하고요, 수강생 중에 오디션을 지원해 합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데뷔한 친구들도 몇명 있죠. 다만 전체 수강생 비율을 고려하면 아이돌을 희망하는 친구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최 대표는 K팝 트레이닝 시스템이 ‘미국’에도 적용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한다.

“저희 모두 알고 있잖아요. K팝 트레이닝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동양인은 시스템에 들어가는 게 익숙하지만, 미국은 완전히 다릅니다. 중, 고등학교 때부터 본인이 직접 결정해서 수업을 듣고, 봉사 활동을 해요.”

“미국 친구들은 워낙 남이 하는 걸 따라하는 시스템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했던 그대로 여기서 하면 아이들이 지칠 것이고, 이게 과연 내가 원하던 게 맞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나올 겁니다”

실제로 재능 있는 미국인 친구에게 연습생을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그걸 듣자마자 하는 말이

“학교는 어떻게 하나요?”

였습니다. 부모님 역시 같은 질문을 했죠.

“한국에서의 1년, 지금도 안 믿겨” - 미국인 아이돌 지망생 로렌

2005년생 로렌(Lauren)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한국 교포지만, 한국어를 따로 배우진 않았다. 들으면 일부 알아듣지만, 말하지는 못한다.

“자라는 동안 엄마가 항상 K팝을 들려줬어요. 제가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아마도 중학교 1학년쯤이었을 거예요. BTS가 인기를 끌던 시기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저는 연극을 좋아하고, 노래하는 것도 좋아하고, 춤추는 것도 좋아했어요.”

미국 뉴저지에 사는 로렌은 중학교 3학년이 된 2018년, 한국에 왔다. “저는 백인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 가야 기회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한국의 트레이닝 문화나 아이돌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싶었어요.”

로렌은 아이돌이 되기 위해 1년간 한국에 머물렀다. 아이돌 트레이닝을 전문으로 하는 학원에 다녔다. 로렌의 부모님은 학원비로 2만 달러(약 2670만 원)를 지불했다. 로렌은 당시 학원 분위기를 이렇게 회상한다.

“전체적으로 압박감이 있었어요. 특히 체중이나 외모에 대한 압박이 심했죠. 아이들이 체중 감량을 위해 식사를 거르거나 물을 마시지 않는다고 했어요. 오디션장 입구에는 체중계가 있었고, 오디션에서 체중과 키를 묻기도 하고요. 저는 2005년생인데, 2009년생들도 많았어요. 당시 10살 정도 아이들인 거죠. 그런 어린아이들이 50kcal 젤리를 먹으면서 다이어트하는 것도 봤어요.”

로렌은 매일 댄스와 보컬 연습을 했다. 집에 오는 시간은 밤 11시. 함께 한국에 온 로렌의 어머니는 매일 로렌과 늦은 저녁을 먹었다. “엄마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저녁을 먹고 점심은 몰래 굶었어요. 저는 마른 체형이었는데도 다이어트 압박이 계속 있었어요.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가 컸습니다.”

로렌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바로 ‘나이’였다.

“왜 이렇게 어린 나이에 시작하는지 이해가 안 갔어요. 아마도 더 이상적인 체형으로 만들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어린아이들은 더 쉽게 조종할 수 있어서일 수 있죠. 나이가 어릴수록 더 유리했고, 저는 나이가 많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미국에서는 그런 압박을 받은 일이 없어요. 학교에서도 특정 기준이나 고정관념에 맞추라는 압박을 받지 않았어요. 한국에서는 그런 압박을 더 강하게 느꼈어요.

“많은 친구들이 연습을 위해 학교를 그만두거나, 학교를 다니면서도 교육에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연습과 오디션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죠.”

미국에 돌아온 로렌은 ‘아이돌’의 꿈을 포기했다. 다시 공부해 뉴저지에 있는 럿거스대학교(Rutgers University) 약학대학에 합격했다. “대학에 입학하는 것보다 K팝 연습생이 되는 과정이 훨씬 더 어렵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는 공부하면 결과가 나오지만, K팝에서 중시하는 외모나 나이 같은 변수는 자신이 바꾸기 힘들거든요. 시간적인 압박도 크고, 데뷔할 기회도 제한적이에요.”

대안은 없을까?

“엘리트 아이돌보다 생활 음악을” - 이준상 칠리뮤직코리아 대표

이준상 칠리뮤직코리아 대표는 30년 동안 음악 산업계에 있었다. 1990년대에는 EMI코리아에, 이후에는 워너뮤직코리아에서 일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직접 회사를 설립했다.

“사실 한국의 아이돌 육성시스템은 미국과 일본에서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 모타운이라는 회사에서 자동차 생산 컨베이어벨트처럼 음악 제작을 해보자고 해서 시도했거든요. 지하에는 연습생들이, 1층에서는 연주만, 2층에서는 작곡만 이런 식으로 만들었죠. 이 시스템을 받아들여서 모델링 된 걸 SM이 적용한 거죠.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갖고 온 거죠.”

그는 이 시스템에 ‘맹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아이돌 비즈니스에는 명과 암이 있죠. 사실은 학습해야 하는 시기에 산업 시장에 투입되기 때문에 노동권, 학습권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또 어렸을 때 진입하기 때문에 가족들이 개입합니다. 패밀리 비즈니스가 되는 거예요.”

그는 ‘생활 체육’이 강조되는 것처럼 ‘생활 음악’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하게 아이돌 시스템 말고, 대안적인 시스템들로 송라이팅(작곡)을 가르친다든가 독립적인 본인의 음악성을 개진할 수 있게 육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데뷔조도 12세부터 출발해서 16세에는 의사결정이 끝난다고 하더라고요. 16세가 넘으면 고령인 거예요. 인적 자원에 관심을 가질 때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소속사에서 인성 교육뿐만 아니라 미래를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거죠.”

그는 최근 음악계에 흐름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웨덴 시스템을 많이 봐야 해요. 스웨덴은 아이돌을 키우는 나라는 아니죠. 그런데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빌보드 1위를 한 이후부터 굉장히 급속도로 국내음악 저작권자의 라인업이 스웨덴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어요. 스웨덴은 1970년대 ‘아바’ 이후에 학교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게 하고, 국가적으로 공교육 내에서 다양한 분야를 학습할 수 있게끔 했어요.”

“엘리트 아이돌만 육성하는 게 아니라 생활 예능이 되게끔 제공해야 됩니다. 그래야지 나중에 그 사람이 법률 공부를 하든 공무원 행정 시험을 치든 사회에 대한 이해도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교육 입안자들이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국가적인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국가적 차원의 지원 필요” - 허찬 AO엔터테인먼트 대표

걸그룹 프림로즈를 제작한 허찬 AO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음악 산업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최근에 스웨덴 작곡가들과 송캠프를 구성하기로 했습니다. 회사에 예산이 없었는데, 스웨덴 정부 덕분에 할 수 있었습니다. 자국 작곡가들이 한국에 가는 비용을 스웨덴 정부에서 전액 지원한다고 합니다. 스웨덴은 세계적으로 음악 관련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죠. 이 산업을 진흥하기 위해 국가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는 겁니다.”

“우리나라 산업은 변화가 없습니다. 1인당 GDP가 4만 달러 이상 되는 나라들은 제조업 기반의 경제가 아니죠. 현재 K팝 시장은 돈으로만 봤을 때는 굉장히 규모가 작지만, 국가적인 브랜드 가치는 굉장합니다. 이 파급력은 돈으로 따질 수가 없죠. ”

그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없다고 지적한다.

“지금은 중소 엔터사가 살아남을 수 없는 시장입니다. 중소 기획사에서 제2의 BTS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냐면요, 회사 명의로 신용카드를 발급받는데 ‘신용카드 보증금’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 제 개인의 신용이나 자산은 문제가 없습니다. 법인 카드인데, 카드 한도가 500만 원입니다. 사실상 체크카드죠. 엔터 산업의 현실입니다. 기업 성장을 위한 인프라가 전혀 없어요”

“저도 아이돌 인권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멤버들의 환경을 고려하고, 의견을 수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일단 이 사업을 유지하는 데만 돈이 정말 많이 들어가다 보니 제 사비를 몇십억씩 투자하고 있습니다. 뮤직비디오 하나 촬영할 때, 메이크업 비용이 얼마인지 아세요? 1200만 원입니다.”

허찬 대표는 문화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산업적 측면에서 엔터사업에 R&D 투자를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무형자산, IP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사업적 측면에서의 인프라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시스템 바꿀 입법 필요” - 김재원 | 국회의원

“여성 가수 출신의 첫 국회의원.”

제22대 국회 비례대표(조국혁신당)로 당선된 김재원 의원은 명실공히 국내 ‘히트’ 가수였다. 본명보다 ‘리아’로 더 잘 알려진 김 의원은 엔터 업계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남다르다. ‘부조리’를 직접 경험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정산을 못 받았죠. 당연히 정산서도 받지 못했습니다. 소속사가 저 몰래 이중계약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제 서명을 위조해 차용증을 쓴 적도 있었어요. 소속사와의 관계에서는 제가 항상 ‘을’이었습니다.”

그가 최근에 주목한 업계 문제는 ‘정산’뿐만이 아니다.

“저는 20살에 데뷔했지만, 지금은 20살에 데뷔 못 해요. 아예 데뷔를 안 시켜요. 회사들이 10대를 데뷔시키기 시작한 게 2000년 중반 이후예요. 그런데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사회적인 논의나 깊은 고민이 없었습니다. 어린 남자, 어린 여자를 섹시하게 포장해 성적인 차원으로 판매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걸 위해서 고혹적인 자태와 포즈들을 11살, 12살 아이들이 배우고 그게 예뻐 보이는 줄 알고 카메라를 들이대죠. 4, 5살 아이들이 TV를 보고 그런 것들을 쫓아가는 게 과연 좋은 것인가, 라고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교육에 대한 고민도 있다.
“아이돌 육성 시스템은 교육과 연습 시스템을 어떻게 병행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습니다. 다만 해결책을 만드는 것은 정말 힘들어요. 이런 산업의 형태가 벌써 20년은 존재를 해왔어요. 그런 시스템에 의해서 지금의 케이팝 산업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시스템을 아무도 바꾸려 하지 않아요. 그래서 이 문제는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이돌이 등장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서부터 아티스트나 현장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다들 이런 얘기를 했죠. 초기에 잡아야 했는데 아무도 잡지 않고 이렇게 흘러왔습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법 제정도 안 되고, 정부에서는 지원이나 이런 부분에 대한 방향성 자체가 아예 없죠. 어떻게 고칠 것이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제가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죠. ”

K팝과 아이돌 산업 ‘숨고르기’가 필요하다

더 크게, 더 길게 성장하기 위해
그간의 문제를 점검하고 개선해야 할 때,
바로 지금이 아닐까?

“그동안 덮어둔 문제를 점검할 때” - 윤선미 KDI(한국개발연구원) 글로벌지식협력단지 초빙전문위원

JYP, FNC 등에서 기획, 마케팅, 제작을 담당하고 AFUN에서 버츄얼 아이돌 마케팅까지 맡은 윤선미 KDI 초빙전문위원은 ‘내실’을 다질 타이밍이라고 말한다.

“이제 내실을 다질 시기라고 봅니다. 그동안 외연의 확장, 성장, 진출 이런 부분에 너무 매달리다 보니까 내부에 문제들이 쌓여왔습니다. 점검하고 가야 해요. 계속 성장만 했잖아요. 문제는 그냥 덮고 지나갔죠. 코로나 이후에 시장도 많이 바뀌고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었거든요. 회사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요. 그러면 이제 여기에 맞는 조직 구성, 산업 구조를 점검해 봐야 합니다. 이제 다시 정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윤선미 초빙전문위원은 다양한 성공 모델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아이돌 모델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으로 성공한 아이돌도, 팬덤이 중점인 아이돌도 있어야 하고요. 자작곡 밴드 아이돌도 많이 나와야죠. K팝이 음악적으로 한 장르에 국한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다양성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고요.”

아이들은 어떻게 아이돌이 되나
'황금알 낳는 거위'는 과연 행복했을까 '황금알 낳는 거위'는
과연 행복했을까
연습생 80%는 무월경 아이돌 10년, 몸이 망가졌다 "연습생 80%는 무월경"
아이돌 10년, 몸이 망가졌다
'단발머리' 유정이 '교육'에 뛰어든 이유 '단발머리' 유정이
'교육'에 뛰어든 이유
15년 노예계약서, 변호사 상의하려니 안 된다더라 15년 노예계약서,
"변호사 상의하려니 안 된다더라"
16세는 고령 연습생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16세는 고령"
연습생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연습생이 되기 위한 연습 '아이돌 학원' 실태 연습생이 되기 위한 연습
'아이돌 학원' 실태
아이돌에도 노동조합이 있다면…
아이돌도 노동조합이 필요해 틴탑 민수의 직언 "아이돌도 노동조합이 필요해"
틴탑 민수의 직언
연습생은 노동자인가, 학생인가? 연습생은 노동자인가, 학생인가?
어느날 아이돌이 사라졌다 그들의 생존기 '어느날 아이돌이 사라졌다'
그들의 생존기
동방신기 사태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동방신기 사태'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이승기도 당한 깜깜이 정산의 실체 이승기도 당한
'깜깜이 정산'의 실체
K팝, 어디까지 왔을까
미국인 연습생이 겪은 한국식 트레이닝 시스템은… 미국인 연습생이 겪은
한국식 트레이닝 시스템은…
미국 청소년에게 연습생 권유하자 학교는요? 미국 청소년에게 연습생 권유하자
"학교는요?"
푸른 눈의 뉴요커는 왜 K팝 아이돌이 될 수 없었나 푸른 눈의 뉴요커는
왜 K팝 아이돌이 될 수 없었나
한국 육성 시스템을 미국에? LA 프로듀서가 고개 젓는 까닭 "한국 육성 시스템을 미국에?"
LA 프로듀서가 고개 젓는 까닭
BTS 그래미상 불발 원인을 K팝에서 찾다 BTS 그래미상
불발 원인을 K팝에서 찾다
북유럽 팬들 K팝 좋아하지만 아이돌 되고 싶진 않아 북유럽 팬들
"K팝 좋아하지만 아이돌 되고 싶진 않아"
 '아바의 나라' 스웨덴 작곡가들이 K팝 만드는 이유 '아바의 나라' 스웨덴 작곡가들이
K팝 만드는 이유
대안은 없을까?
육성과 규제, 양자택일만이 답일까 육성과 규제,
양자택일만이 답일까
'헤비메탈 성지' 스웨덴 록페에서 '더 나은 K팝'을 묻다 '헤비메탈 성지' 스웨덴 록페에서
'더 나은 K팝'을 묻다
 실력파 J팝 밴드가 끊임없이 배출되는 비밀은 학교에 있다 실력파 J팝 밴드가
끊임없이 배출되는 비밀은 학교에 있다
공교육으로 아이돌 키운다 K팝 고등학교를 가다 "공교육으로 아이돌 키운다"
K팝 고등학교를 가다
똑같은 '성공공식' 벗어나야 K팝이 산다 똑같은 '성공공식'
벗어나야 K팝이 산다
'리아'가 겪은 불공정, '김재원'이 바꿀 것 '리아'가 겪은 불공정,
'김재원'이 바꿀 것
장재원 SM유니버스 대표 SM 하청업체 아니라 K팝 전문 교육기관 장재원 SM유니버스 대표
"SM 하청업체 아니라 K팝 전문 교육기관"
국회 찾은 전직 아이돌 K팝 기형적 성장 막아달라 국회 찾은 전직 아이돌
"K팝 기형적 성장 막아달라"
기획취재팀
김남희 | 기자
봉성창 | 기자
전다현 | 기자
전현건 | 기자
구성
전다현 | 기자
웹페이지
이준행 | 개발자
영상 편집
이지현 | PD
삽화
심예주 | 디자이너
사진˙영상
이오이미지
영상장비 협조
SONY KOREA
데이터 제공
허유정 | 소우주컴퍼니 대표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비즈한국